21세기에도 계속되는 지정학적 갈등...
현 시대를 지리 전쟁의 시대라고 명명한 저자는 세상은 정신없이 돌아가면서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고 있지만 정작 지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고 말한다. 이제 다극화 체제로 전환된 세계에서 광범위한 파급력을 몰고 올 오스레일리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영국, 그리스, 터키, 사헬, 에티오피아, 스페인, 우주 10개 지역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이 란
□ 오스트레일리아 : 지리적 위치와 면적이 강점이자 약점이 된다
- 하나의 국가이면서 대륙이기도 한 오스트레일리아를 인도-태평양 지역의 중심에 위치한 21세기 경제 강국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이야기는 영국이 죄수들을 되도록 멀리 떨어진 곳으로 추방해서 이들과 모든 관계를 끊어 버리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에서 시작한다.
- 광활하지만 타는 듯이 뜨거운 땅, 많은 곳이 사람이 살 수 없는 악조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사실상 단일 문화라 할 수 있었던 곳이 지구상에서 최고로 다양한 문화를 가진 현대 사회로 번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 세계에서 6번째로 큰 나라이면서, 그러나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은 3분의 1도 안되는 곳이다. 대부분은 넓고 평평하고 몹시 건조한 평야지대이며 대륙으로서 사막부터 열대우림, 눈 덮인 산에 이르기까지 극도로 다양한 기후와 지형을 보여준다. 하지만 국토의 70%를 차지하는 대부분은 아웃백이라 알려진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다.
- 대다수가 죄수들로 이뤄진 새로운 이주민들, 경기가 좋아지면서 숙련된 노동자, 상인들, 회계사와 변호사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 그리고 현재의 기질을 만든 금 채굴자들로 구성되었고, 1901년 1월 1일 6개의 영국령 식민지들이 연합하여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을 구성했다. 이후 1986년 완전한 독립을 성취하였다. 새 정부 초기의 이민 제한법은 백호주의 정책이다. 백인이외의 여러 유색 인종의 이민을 배척하던 백인 우선주의 정책이다. 하지만 10파운드 이민 정책, 1900년 후반 이탈리아, 독일, 그리스 등에서 1956년 혁명에서 피신해온 헝가리인들, 1968년 소련 침공 이후에는 체코인들, 남아메리카와 중동지역에서는 주로 정치적 박해를 피해, 1970년 수천명의 베트남 보트피플, 1990년대 유고 내전 난민들이 들어오면서 다문화 국가로 변모되었다.
- 양모, 양, 육류, 밀, 그리고 와인산업, 전 세계 매장량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우라늄, 아연과 납은 세계 최대 매장량, 텅스텐과 금의 주요 생산국 등 풍부한 천연자원, 하지만 강물이 흐르는 곳의 지형이 대개는 평평하고 유량도 일정치 않다보니 수력 발전에 적합하지 않아 유일하게 태즈메니아 지역만 유일한 물 부족국가이다.
- 서쪽으로는 인도양을 동쪽으로는 태평양이라는 거대한 두 수역 사이에 자리잡은 오스트레일리아는 북쪽으로는 중국이라는 거대 세력을 두고 있다. 현재로서는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도 경제적인 측면에서 베이징과 건설적인 대화를 이끌어가고 미국과는 방위를 비롯한 여러 연결고리를 유지하는 데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지만, 어쨌거나 힘든 경기를 치러야 할 것임은 분명하다.
□ 이란 : 전 세계와 기싸움을 벌이며 신의 과업을 수행 중이다
- 이란 사람들은 밀가루로 만든 바삭바삭한 난 에 바르바리라는 것인데 바닷소금으로 간을 하고 참깨와 양귀비씨를 뿌려서 주로 아침에 먹는 빵이다. 모양은 대체로 기다란 타원형이고 안쪽에는 위에서 아래로 평행선 몇 개가 그어져 있다. 이는 나라의 모양과 닯았다는 얘길 자주 한다.
- 중동의 주요 강대국, 이 지역 전역에서 테러와 공포와 피를 뿌리는 억압적인 정권, 이스라엘과는 팽팽한 긴장 관계에 놓여 있고, 걸핏하면 미국과 기싸움을 벌이는 것처럼 보인느 잠재적 핵 보유국, 그렇다 하더라도 미국이든 다른 어느 나라든 선뜻 파병을 결행하고 싶어하지 않는 나라이다. 콜린 파월은 이란 공격에 대해 "사막은 가증하지만 산은 가능하지 않다"라는 오래된 격언을 통해 실행하지 않았다.
- 이 나라의 국경을 따라가면 1천 5백 킬로미터 길의 자그로스 산맥, 끝나나 싶을 때쯤 엘부르즈 산맥, 이어서 센트럴 마크란 산악지대와 만난다. 이는 침공해서 정복하고 싶다면 산을 넘고 사막을 건너 습지대에 가서 싸우든가, 아니면 수륙양용 작전을 펼친 뒤에 다시 산을 넘고 사막을 건너 습지대에 가서 싸워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진격하였고, 1200년대와 1300년대에는 몽골족이, 티무르가 이어서 침공하였지만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길만큼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 이란의 가장 중요한 수출 상품은 에너지다. 주요 유전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이라크와 맞닿은 지역에 있고, 가스전은 주로 엘부르즈 산맥과 페르시아만 쪽에 집중해있다. 따라서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오만만으로 들어가는 것이 주요 수출로 중 하나가 된다. 세계 원유 공급량의 5분의 1이 이곳을 통과해야 하므로 이곳은 양날의 검과 같다.
- 기원전 550년 키루스 2세가 메디아 왕국을 점령해 페르시아 제국에 합병했다. 이후 다리우스 1세가 이집트와 리비아 일부, 파키스탄과 인도 북쪽까지 점령하고 세계 최초로 말들을 갈아타는 우편배달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후 여러 침공에 의해 분할되었다가 사파비 왕조가 들어서고 1501년 이스마일 왕은 시아파 이슬람을 국교로 선포했다. 이스람 세계에서 수니파와 시아파 분열의 기원은 서기 632년 선지자 무함마드가 세상을 뜬 뒤 후계자 여부에 의해 되었다.이 결정은 훗날 이란을 지금의 나라가 되게 했고, 레바논에서의 긴장 형성, 예멘과 시리아의 내전,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간 충돌의 불씨를 제공했다.
- 1979년 이란혁명을 통해 등장한 호메이니는 이란혁명수비대를 창설하고 여성의 자유를 억압하고, 히잡 착용을 강요하였으며 결국에는 이란의 권력을 잡게되었다. 이를 지켜보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이미 어려운 처지에 몰려있는 다수 시아파에 대한 탄압의 고삐를 더욱더 조였고 이윽고 1980년 9월 아예 이란을 침공했다. 이는 이라크 국내의 시아파에게 이란 혀명의 여파가 파급되는 것을 두려워해서였다. 후세인은 속전속결로 승리를 거머쥘 걸로 기대했지만, 결과적으로 1백만 명 이상을 죽음으로 몰고간 처참한 계산 착오를 저지른 것이다. 이는 8년에 걸친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남겨졌다.
- 왕관에서 터번으로 터번에서 부츠로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왕조에서 이슬람이라는 종교로 이후에는 혁명수비대가 국정을 장악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혁명수비대가 국가와 얽혀있음에도 현재는 관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 흥미로운 부분이다.
- 현체제 아래에서 이란은 소위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해 있다. 정권을 여전히 지지하고 있는 수백만명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정통성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체제 완화를 시도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젊은 세대는 날이 갈수록 21세기보다는 16세기에 더 어울려 보이는 체제에 점점 더 환멸을 느낄 것이다. 1979년의 이란 혁명 즉 이슬람 시아파 지도자인 호메이니를 주축으로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이란이슬람공화국이 세워지는 것을 경험한 세대는 시간과 인구 통계학적 변화가 그들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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